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거룩한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세상 속으로 보냄받은 선교적 공동체입니다. 이 두 정체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부름받음이 없다면 보냄도 없고, 보냄이 없다면 부름의 목적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한복음 17:18
1.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간구하시며, 진리로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에서 18절은 교회의 정체성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와 방식에서 불러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성공과 힘, 경쟁과 자기중심성에 끌려가는 대신 복음의 진리와 거룩함, 사랑과 섬김을 따라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이유는 스스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됨은 세상을 정죄하거나 멀리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도 예수님의 성품과 복음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교회는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지만 세상을 외면하도록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 소외된 이웃, 복음이 필요한 민족과 나라 한가운데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보냄받았습니다.
교회가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머문다면 거룩함을 지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보내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복음의 진리와 정체성을 잃는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3. 창조적 긴장이란 두 부르심을 동시에 붙드는 것입니다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는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나오도록 부름받고 동시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록 보냄받은 공동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이 두 부르심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창조적 긴장은 어느 한쪽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진리를 흐리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상의 아픔에 가까이 가고, 복음을 분명히 전하면서도 사람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 긴장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교회는 살아 움직입니다. 복음과 현실, 거룩함과 참여, 예배와 선교를 함께 붙드는 가운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4. 교회는 하나님의 ‘실험적 정원’이 되어야 합니다
보쉬는 교회를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실험적 정원’으로 표현했습니다. 정원은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를 미리 보여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고 화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에서 경쟁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섬기고, 가진 사람이 나누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돌보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세상에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교회는 삶으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5. 성령의 첫 열매, 하나님의 통치의 한 조각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 그 자체는 아니지만, 성령께서 이루실 새 창조의 첫 열매를 세상에 보여 주는 공동체입니다. 마치 첫 열매가 앞으로 올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듯이, 교회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오늘의 삶 속에서 미리 보여 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의 한 조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정의가 실천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위로받고, 외로운 사람이 가족을 만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보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 약한 사람을 돌보는 방식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냅니다.
6. 선교사와 후원자의 관계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보여야 합니다
이 원리는 선교 현장의 전방선교사와 후방선교사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선교가 단순히 후원금을 보내고 받는 관계로만 머문다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충분히 보여 주기 어렵습니다.
전방선교사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후방선교사는 기도와 사랑과 후원으로 함께합니다.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형편을 나누며, 기쁜 일과 어려운 일을 함께 품을 때 두 사람의 관계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표지가 됩니다.
후방선교사는 선교사를 일방적으로 돕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입니다. 전방선교사 역시 도움을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현장의 은혜와 기도제목을 나누며 후방의 동역자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세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7. GSM의 1:1 동역선교
GSM이 지난 세월 동안 붙들어 온 ‘전방과 후방을 잇는 1:1 동역선교’는 이러한 선교적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살아내려는 노력입니다. 한 명의 전방선교사와 한 명의 후방선교사가 기도와 연락, 교제와 돌봄, 후원으로 오래 함께 걸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의 크기보다 관계의 진실성과 지속성입니다. “선교사님,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짧은 연락,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며 드리는 기도,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작은 순종이 한 선교사를 세우고 한 지역을 변화시킵니다.
전방과 후방이 서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그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의 실제를 보게 될 때 1:1 동역은 단순한 후원 제도를 넘어 선교적 공동체의 증언이 됩니다.
8.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세상의 평가와 방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어디에 있든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냅시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선교 현장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와 섬김, 나눔으로 가까이 다가갑시다.
한 선교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연락하며, 기도하고 후원하는 지속적인 관계를 시작합시다.
